그림자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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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 옛날 어린시절 황토먼지 날리는 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생각납니다.
아무리 걸어도 멀기만 했던 그 길 따라, 코흘리개 소년의 눈물과 꿈과 사랑이 하나 둘 하얗고 붉은 코스모스 꽃으로 피어납니다.
이젠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 남겨졌지만, 어쩌다 코스모스가 핀 길을 만날 때마다 왠지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어쩌면 초등학교 교과서의 영희와 철수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가을이란 계절이 만든 쓸쓸함인지도 모르죠.
그 옛날 코스모스를 곱게 말려 편지지에 붙여 쓴,  어느 소녀의 풋풋한 사랑 같은 싱그러운 미소가 떠오릅니다.
카세트라디오에 알아듣지 못하는 팝송을 틀고, 어깨엔 그리 잘 치지도 못하는 통기타를 둘러메고, 마치 시인처럼 단풍 곱게 든 교정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설익은 인생과 철학을 논하던, 친구의 여드름 가득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들국화란 이름으로 총칭되던 연보랏빛 들꽃들…
추수가 끝난 잡초가 우거진 발에 버려진 마르고 비트러진 엇갈이무와 갈라진 당근들…

 


파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고추잠자리, 허기를 달래주던 지지리도 못 생긴 뚱딴지와 움돋이 난 꽃상추…
아직 채 피지 않은 달맞이꽃 따다 훅 불면 마치 병아리 고운 털이 날리듯 달아나던 노란 꽃가루…
그 길에서 함께 걷던 코흘리개 친구들…
어느날 지나가던 수학여행 버스에서 쏟아져 내린 메모나,
소설주니어 펜팔란에서 단지 예쁜 이름이란 이유로 보냈던 펜팔편지가 생각납니다.
오늘 이 가을에, 얼굴도, 모습도, 그리고 마음도 몰랐지만 사랑이라 착각했던 그 편지를 다시 써봅니다.
이미 세월은 흘러 그 시절의 모습이나 마음은 아닐지라도 왠지 가을이란 계절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책갈피 속에 끼워진 말린 낙엽에 쓴 작은 편지라도 말입니다.
매년 이렇게 입은 옷에서 가을을 느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지난날의 푸르렀던 추억들이 가을 하늘처럼 마음에 다가옵니다.
아마 추석이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은연 중 표출된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언제나 난 낯설음 같은 가슴의 아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난 이 가을이 오면 떠나간 사랑과 추억속의 사람들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파란 하늘을 지나쳐가는 새털구름처럼 뚜렷하게 얼굴이나 모습이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희미한 얼굴과, 듬성듬성 이가 빠져버린 기억이 어우러질수록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별할 당시는 세상을 단절하고 싶을 정도로 아파했을지라도, 그 시간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겠죠.
가을은 내게 있어 아마 연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나는 항상 이렇게 가을이 돌아오면 그동안 나를 기억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집니다.
지난 일년 동안 어려움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즐거움을 함께 나눠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설령 내게 어렵고 힘든 일을 겪게 했을지라도 그로 인해 내 인생 역시 풍성하게 살찌울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주는 결실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결코 혼자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도통 뒤를 돌아보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중장만 옳고,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려 합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함께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그동안 도움의 손길을 보태 준 사람조차 그저 나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내 모습 뒤의 그림자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그림자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이 가을에 추억이라는 나의 마음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만나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로의 변한 모습을 바라볼지언정 그래도 잠시 동안만이라도 만나고 싶습니다.
설령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내내 가을날 아침에 맞는 청랑함처럼 당신이 그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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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혼™

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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